전북
김제 황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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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에서 용지면 소재지로 가는 도중 면소재지에 거의 다 가서 들녘 가운데 흐르는 용암천에 이르는데 큰 하천은 아니지만 약 10여m의 넓이로 사석이 없는 하천으로 서쪽으로 흘러가다가 북쪽으로 흐르는 부용천에 합류되어 만경강으로 들어간다.

    고은교가 있는 용지면 구암리 평고마을은 옛날 백제 시대에는 수동사현이라 칭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평고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기에는 전주로 잠시 이속 되었다가 그 후 김제군의 관할로 영속되면서 폐현 되었던 곳이다.

    백구면에서 시작되어 평고를 거쳐 김제∼이서∼전주선에 이어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는데 교통수단에 문제가 있어 조선시대 세조 때 순수한 화강석으로만 교량을 축조하였는데 축조된 다리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한 무지개식 돌다리였다.

    황토마을 고은교는 고은 안지공으로 연유하여 놓여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공은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자 영월파천을 비분개탄하고 조정에서 은퇴하고 친형의 은거지인 김제시(김제군) 용지면 평교리 안촌마을을 찾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이때 공은 평고라는 마을이름 끝자를 따고 아래에 숨을 은자를 붙여 고은이라는 아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왕위에 오른 세조는 고은 선생의 인물을 아끼어 누차 소명을 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세조는 고은의 은거지를 중심으로 용지면, 금구면, 백산면 등 일대를 사폐장지로 하사하고, 그 후 또 어의까지 하사하여도 소명에 따르지 아니했다. 세조는 생각다 못해 고은 공의 옛 제자를 기용해서 김제 군수로 임명하고 군수로 하여금 선생을 모시도록 하였다. 군수는 고은 선생의 성품과 지조를 잘 아는지라 매삭 문안을 드렸다.
    이렇게 되자 고은도 사랑하는 제자인 군수를 한번은 방문하기 위해서 김제 동헌을 나오는데 용지천에 이르러 냇물을 다리를 걷고 건넜다. 이 말을 전해들은 군수는 민망하게 여기고 그 용지천에 군비를 투입해서 영구적인 훌륭한 무지개 돌다리를 놓아 군민의 불편을 덜어 주었고, 다리 이름은「고은교」라고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은교는 화강석 순석조물로 네 개의 무지개문으로 되어 있는데, 다리의 길이는 30척이요, 넓이는 9척3치, 높이는 10척으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71년도에 현대식 시멘트 콘크리트 교량 확장공사로 말미암아 철거되어 그 잔영조차 볼 수 없게 되어 문화재를 아끼는 사람들의 여론으로 정부에서 고은교 옆에 유허비를 세워 보호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