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황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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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흙, 황토에 대해 아시나요?"

    황토란?

    흙은 지구상의 지표면에 약 10%를 덮고 있는 무기물 형태의 광물질이며, 색깔별로 황토, 흑토, 홍토, 백토 등으로 구분되고 그 쓰임새도 다양하지만 이들 중 약성이나 효용 면에서 단연 황토가 으뜸이라 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살아 있는 생명체라 하여 엄청난 약성을 가진 무병장수의 흙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황토 한 스푼에는 약2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어 다양한 효소들이 순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황토의 성분은 실리카(SIO2), 알루미나(A12O3), 철분, 마그네슘(Mg), 나트륨(Na),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으로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하며, 동쪽의 햇살을 가장 많이 받은 동(東)황토는 황토중의 황토라 불려 진다.

    또한 황토는 표면이 넓은 벌집구조로 수많은 공간이 복층구조를 이루고 있어 이 스폰지 같은 구멍 안에는 원적외선이 다량 흡수, 저장되어 있어 열을 받으면 발산하여 다른 물체의 분자 활동을 자극한다.
    즉 황토는 유수한 세월 동안 태양에너지를 흡수하는 규소성 광물로서 쉽게 말해 '태양 에너지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황토는 자연환경을 정화하고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보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할 중요한 자원이다.

    한국의 황토

    황토를 약으로 사용한 기록으로는 세종 때 권채(權採) 등이 쓴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1431) 과 선조 때 허준(許浚) 의 "동의보감"(東醫寶鑑·1613), 숙종 때 홍만선(洪萬選) 의 "산림경제"(山林經濟) , 고종 때 이재우의 "왕실양명술"(王室養命術) 이 그것이며 고대 역사서인 "삼국사기"에서도 황토와 관련한 '우토'(雨土) 에 대한 기록이 여섯 차례나 보인다.

    우리 민족은 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흙을 어머니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흙 문화를 간직하고 있고 옛 선조들은 초가집(토담집)을 짓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흙으로 만든 구들방에서 생활했다.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하여 피로에 지친 몸도, 흐린 날이나 장마에 무겁고 결린 몸도 흙 온돌방에서 땀 흘리고 나면 아침에 거뜬히 일어날 수 있었고 목욕 한번 제대로 못하고 항생제 없이도 큰 병을 모르고 살았다.
    이 같은 조상들의 슬기로운 주거문화에는 「흙」이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재산이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의 황토를 살펴보면 황토의 발달 정도는 풍화 환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또한 모암의 종류나 구성 광물 및 화학 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대체적으로 서해안의 황토가 발달되어 서해안 지역에는 양질의 황토가 생성되었고 순수 황토는 고령토나 점토보다 찰력이 많은 입자로서 연황색이나 분홍색을 띠고 있는 고생대의 퇴적물로 실리카와 알루미나, 철 마그네슘, 나트륨, 카리 등 수많은 무기질이 함유된 미세입자로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과 많은 약성을 갖고 있는 살아 숨쉬는 흙으로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는 인체에 매우 유익한 물질이다.

    세계의 황토

    인류문화의 발생과 발전도 황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세계의 4대 문명지는 황토대 위에서 시작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황토 분포지는 북위 22도∼55도 사이에 있고 이는 신기하게도 인더스, 황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의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와 일치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 지역에 포함되며 옛날 유적지들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황토 지대임을 볼 때 문명의 발상지가 황토 지대임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고인돌과 미이라는 황토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대 족장의 무덤 고인돌을 집단 주거 생활의 터임을 알려주는 것이며 동북아 최대의 고인돌이 있는 전북 고창읍의 성지대가 황토대위에서 이루어졌음을 볼 때 선사시대의 주거 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계 왕족의 무덤으로서 불가사의라 불리우는 수천 년의 미이라가 황토대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중국의 문헌을 보면 다양한 기록들이 있는데 기원전 78년 한(漢) 나라 진(進) 황제 때 '어느날 아침 북서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더니 붉고 노란 구름이 하늘을 덮고 황토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땅으로 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夏) 나라의 우왕(禹王) 또는 백익(伯益) 이 저술한 중국 최고(最古)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을 비롯해 전한(前漢) 시대 유안(劉安) 이 쓴 "회남자"(淮南子), 후위(後魏·6세기) 가사협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 에도 황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며 명(明) 대의 이시진(李時珍) 이 펴낸 "본초강목"(本草綱目) 은 황토의 다양한 효능과 치료법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결국 황토라는 말은 기원전부터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약용으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