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 황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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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만대장경부터 항아리까지"

    예로부터 황토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황토를 활용한 치료법들이 고서적들에 남아 있고 민간에도 황토 요법들이 많이 전해오는데 선조들의 지혜를 통하여 황토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아보자.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고려 때 조판된 팔만대장경이 그 정확성과 정교함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바닷물에 적셔 말린 산벗나무를 재료를 하였다는 점과 보관장소인 장경각 내부가 황토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며 황토의 기운을 충분히 받은 팔만대장경은 습도조절과 완벽한 통풍조절로 변질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220년동안 보관되어온 규장각

    220년동안 보관되어온 규장각 조선후기 정조가 창경궁에 설치한 규장각은 역대 국왕들의 정치기구이자 어제와 도서를 보관, 관리하는 기구이며 1776년에 설치되어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된 규장각의 도서가 지금까지도 연구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황토의 기운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룡간의 효능

    중국과 우리나라의 종합의학사전 본초강목, 한약집성방에는 복룡간의 효험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복룡간은 아궁이속의 흙을 말하며 이는 부인의 어지러움이나 토혈 및 중풍 치료제로 쓰였다.
    아궁이에서 주방일을 하던 옛날 여인들에게 암이나 기타 질병이 없었던 것도 복룡간의 효험 때문으로 보고 있다.

    임금님의 병을 치료하는 황토방

    왕실의 양명술에는 뒷날 세상사람들을 구하는데 황토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특히 온천을 개발하여 눈병을 치료했던 세종, 세조 임금은 황토를 민간에 알리게 했으며 왕과 왕자들이 피로할 때 쉴 수 있도록 3평정도의 황토 방을 궁내에 만들어 피로회복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황토는 상사병의 치료제로도 효력을 발휘했는데 강화도령 철종임금이 고향에 두고 온 첫사랑을 못 잊어 상사병에 시달렸을 때도 황토방에서 요양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민간에서는 상사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황토를 은단처럼 작게 만들어 먹였다고 한다.

    원기를 북돋게 하는 황토방

    고려시대 나이 많은 재상이나 병자의 치료 방으로 쓰기 시작한 황토 방은 아예 임금을 위한 황토 방을 따로 만들어 많은 궁녀를 거느리는데 기를 북돋게 하였고 광해군은 황토 방에서 지병인 종기를 치료하였고 강화도령 철종은 상사병을 치유(심신을 안정하게 하는 물질) 하였고 세종대왕도 몸이 불편할 때 황토 방을 이용하였다.
    지금도 창경궁(서울 안국동)에서 임금님이 거처하시던 황토 온돌방을 공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궁녀를 거느릴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인과 장독대

    여인과 장독대 우리는 집을 지을 때 남쪽을 향해 짓고 뒤꼍에는 장독대를 둔다.
    장독대는 장을 담은 독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우리 조상들은 세계에 드물게 발효식품을 개발했고 이를 독에 넣어 저장했다.
    장독대는 한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곳으로 남의 손이 미치기 어렵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깔끔하게 만들었는데 대개는 부엌 뒷문 가까이 만들었고 잘 사는 집에서는 대청의 주축선과 일직선 되는 곳에 만들었으며 남해안이나 서해안의 작은 집이나 뒤꼍이 넉넉지 못한 집은 양지 바른 앞마당에 두기도 했다.
    큰 독은 뒤로하고 차츰 작은 독들을 나란히 놓았는데 크고 작은 독, 항아리, 중두리, 새우젓독, 감항아리, 동이, 자배기, 버치, 방구리, 시루, 소래기 등 갖가지 옹기들이 모인 장독대는 한국만의 멋이고 자랑이다.
    장독대는 돌을 쌓아 다소 높게 하여 햇볕이 잘 쪼이고 바람이 잘 통하며 배수가 잘되게 만들었는데 장독대 주위에는 감나무, 석류 등 벌레가 끼지 않는 나무를 심었고 주위에는 채송화, 봉숭아, 분꽃, 맨드라미, 접시꽃 등 붉은 꽃을 심어 부정한 것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다.
    옛 여인들은 부엌과 장독대, 텃밭과 광, 빨래터와 우물가를 오가며 날씨에 따라 열고 닫고 훔치고 다듬어 햇볕과 눈비, 이슬과 바람을 잘 조절하여 장맛을 유지했다.
    우리나라는 크고 작고 차이는 있지만 어느 집이나 장독대가 있고 아주 소중하게 다루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옹기는 흙의 정기가 숨쉬는 그릇이며 좋은 옹기에서 숨을 쉬어야만 제 맛이 나는 장이나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